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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5.03

겨레의 창

일흔 해를 앓아온 조국의 불치병을 치유하려면

_ 이충재 / 시인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한 이후 수없이 많은 사건사고로 점철된 한반도의 상흔을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겨레 스스로가 겪은 아픔도 있고, 타인에 의해서 씻지 못할 아픔을 겪어 온지 어느덧 일흔 해가 되었다. 정확하게는 예순 다섯 해라고 해야 할까. 어릴 때부터 선천성 소아마비를 통해 불구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어나자마자 불운의 사고로 인해서 후천성 장애를 입고 일흔 해를 절뚝이며 살아오는 노인도 있다. 이들의 인생담을 듣노라면 아마도 눈물 자아내지 않을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통렬한 아픔과 고통을 당하고 전 세계인들의 마지막 이 순간까지 조롱과 멸시 긍휼의 대상이 된 민족과 겨레가 있으니 바로 이 나라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된 허리의 통증과 회복을 위한 노력은 아직도 그림의 떡, 강 건너 불구경하듯 기초에 머물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허리 잘린 불구의 몸에 고칼로리의 양분만을 공급하다보면 체형은 기형으로 변해 더 이상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한반도가 이 같은 체형을 유지한 까닭에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지 못하고 안과 밖에서 밀려오는 내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래전 군에 몸담고 있을 때 전쟁을 예비해서 완전군장으로 민통선까지 진군하는 훈련을 한 적 있다. 거점을 확보하고 잠시 지친 몸을 쉬어갈 무렵, 북풍을 따라 들려오는 대남방송을 듣고서야 비로소 군인이란 소명의 중요성을 떠 올렸고, 이 나라가 처해 있는 불행한 현실을 읽고 눈물을 흘렸던 날이 기억난다. 그런가하면, 판문점을 방문하여 무릎높이의 말뚝이 남과 북의 경계선이고, 남과 북간 이념의 극심한 벽이 고작 경계석 한 개의 높이라는 것과 이를 넘지 못한 채 아직도 세계인들이 우리나라더러 장애를 앓고 있는 민족이라고 하는 것 같아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에 젖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 한국시인협회에서 『DMZ, 시인들의 메시시』를 통해서 시인들이 한반도의 실태를 나름대로 시에 담아 출간하여 칠순이 된 한반도를 위로한 적 있다.

   한때 대학원에서 우리의 형제인 북한과 관련된 과목을 청강할 때, 독일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한 외국인 강사를 통해서 북한문학을 들을 때의 자존심 상함은 아직도 기억 속에 깊게 침잠되어 있다. 학부에서도 북한문학에 대해서 다른 학생들보다도 관심이 높았으며, 잡지에 현대 북한 시문학 고찰에 대한 소논문을 게재할 만큼 남과 북의 현 상황에 관심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이렇게 불구의 땅 한반도가 통일이라는 치유가 완전하지 못한 채 무작정 나이 들어가면서 발산하는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치유 방법을 모색해오곤 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나름대로 처방전을 내린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깊은 상처에 밴드 하나 붙여 주거나, 연고 한줄 발라주는 또는 누군가 붙여 놓은 밴드를 떼어내고 자신의 상호가 붙은 밴드를 붙이듯 정확치도 않은 처방전을 들고 부산을 떤 것 같아 안타까움이 여전히 남는다.

   이제는 이 겨레가 해방이 된지 어느덧 일흔에 이르렀다. 인생도 일흔이면 제 정신세계와 육체가 말을 잘 듣지를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산적해 있는 일을 해결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미시적으로 생각하면 그 만큼 자기 나름대로의 고착된 상처가 또 다른 세포를 형성하여 오래전 만들어 놓은 연고나 치료제로는 효능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새로 처방전을 내고 그에 맞는 약품을 생산해 내지 않으면, 한반도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고착되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됨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이에 우리는 어떤 치료제를 연구해 내야 할 것인가? 일흔의 한반도는 중병에 걸려 있다. 그런 까닭에 종합병원에서의 각기 다른 의료진이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처방전과 시술을 하지 않으면, 치유는 불가능해 진다. 그런데, 한반도는 여전히 내과, 외과, 부인과, 이비인후과, 내분비내과, 소화과 등 각기 다른 처방전을 낼 뿐 절대적으로 협력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본다.

   나는 시인이다. 감정과 이성과 연계하여 한편의 글을 써 내는 지적노동의 가치를 경험하면서 살아오는 사람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삶의 내면과 이면을 철저하게 진단하여 문제성을 지적해 내는 일에 몸담고 있다는 방증이다. 예술과 학문만큼 자유로운 것도 없다. 펜이 칼 보다는 강하다는 말도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할 때, 칼의 위력을 앞세운 지금까지의 경쟁력으로는 이 나라가 겪고 있는 후유증을 완전무결하게 치유하여 오대양육대주를 향해 내 달릴 수 있는 기력을 회복할 수가 없다.

   편식만으로는 결코 건강을 회복할 수 없듯이 일흔의 고령인 신체불구인 한반도를 온전하게 통일이라는 출발선에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與와 野 정치는 물론, 지방색으로부터 오는 크고 작은 무가치한 이념에 사로잡혀 제자리 뛰기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대신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문학, 예술 그리고 체육과 경제, 국방이 한 곳으로 집약된 건강한 제안과 함께 건강한 목소리가 수반된 행위로 서로 다가가서 허리 잘린 채 늙어버린 고령의 한반도를 보듬어 안을 수 있다면, 자의적인 통일은 곧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이제는 반만년동안 이어온 가여운 한반도가 불구의 몸으로 100세를 맞게 할 수는 없다. 좀 더 건강한 몸으로 한반도의 대계를 기약할 수 있도록 각자의 利己는 덜어내고 서로의 재능과 힘을 한 곳으로 모아 우리의 땅 한반도가 통일이라는 기력을 회복 시켜주고 한번 신바람을 내며 오대양육대주를 향해 발진 할 수 있는 추진력으로서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충재 |

1994년 문학과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성서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문인협회와 한국 시인협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제9시집『그대 입술의 힘』으로 제7회 한국 기독교 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국NGO신문에 칼럼과 월간지 <내 마음의 편지>에 서평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시집 『그대 입술의 힘』외 8권, 산문집『행복한 아이야 지혜롭게 세상을 배우거라』외 4권, 청소년을 위한 자기개발 에세이『책의 숲속에서 멘토를 만나다』, 칼럼집『아름다운 바보의 세상보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