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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4.03

남녘말 북녘말

'위신스키’의 눈에 비친 평양 풍경- 제22차 남북공동회의를 다녀와서

_ 김병문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 단물 말입니까?”
   ‘마실 것은 무엇으로 하겠냐’는 고려항공 여성 승무원의 물음에 ‘사이다’를 달라고 했더니 되돌아온 말이다. 콜라를 주문하면 어색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딴에는 조심스럽게 건넨 말이었는데, 마치 정성들여 쓴 글이 빨간 펜으로 잔뜩 교정되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네들의 이른바 ‘말다듬기’는 사전이나 문법서의 몇몇 대목만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실제의 언어생활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호텔 숙소에 비치된 목욕 용품에는 ‘머리물비누, 머리영양물비누, 몸물비누’란 이름이 붙어 있었고, 건물 꼭대기에 있는 우리로 치면 스카이라운지에 해당하는 곳은 ‘만장층’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만장’은 ‘천장과 지붕 사이의 빈 곳’을 뜻하는 고유어인데, 우리에겐 거의 잊혀진 이 말이 47층의 현대식 건물에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무래도 우리가 외래어를 더 많이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말들을 북측이 이해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그런 말을 문제 삼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 회의 때는 ‘글래머’라는 단어가 끝까지 애를 먹였다. “육체가 풍만하여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이라는 뜻풀이로도,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면서 여자가 들어왔어. 30대 후반의 예쁘고 잘 차려입은 {글래머였는데} 너처럼 풍만했어.”라는 예문으로도 그들은 끝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토론하던 북측 참가자가 그쪽 여성에게 ‘남측에서는 이런 말을 쓴다는데 동무는 글래머는 못 되겠어’라고 하는 바람에 황급히 남자가 여자들한테 함부로 쓰지는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사전에 실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그들의 판단만 더욱 굳어졌을 뿐이었다.
   물론 그들이라고 외래어를 안 쓰는 것은 아니다. 호텔의 매점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에스키모’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었고 ‘쵸콜렛트 사탕’이라고 적힌, 우리 기준으로는 초콜릿도 아니고 사탕도 아닌 젤리 비슷한 것을 사먹을 수도 있었다. 회의 중 해당 원고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뜻에서 무심코 ‘오케이, 오케이’ 했다가 그것이 무안해 북쪽에서도 ‘오케이’란 말을 쓰냐고 묻자, “쓰긴 쓰는데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우린 ‘위신스키’라고 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위신(威信)’에 사람을 뜻하는 러시아어 ‘-스키’를 덧붙인 말인데, 잘난 척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외래어 사용에 대한 그네들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인 듯하다. 아마 그들이 봤을 때 남쪽은 ‘오케이’를 연발하며 겉멋만 잔뜩 든 ‘위신스키’들의 나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남과 북의 언어 차이가 이런 외래어 사용에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체제의 차이로 인해 각 측에서 새로 생겨나거나 다른 의미로 쓰이는 말들도 있고, 그 이전부터 있던 방언적 차이 때문에 생긴 형태 의미적 차이도 있다. 그런데 이런 유와는 다른, 즉 서로 왕래와 교류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차이도 있다. 예를 들어 ‘대박(大舶)’은 본래 ‘큰 배’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남측에서는 여기서 번져 ‘큰 이익’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북측에서는 이런 뜻으로는 안 쓰냐고 묻자 ‘통일 대박’이란 말을 듣고 비로소 알았다 한다. 또 ‘대범하다’라는 말을 북쪽에서는 우리가 주로 쓰는 뜻 외에도 ‘까다롭지 않고 아주 쉽다’라는 뜻으로도 쓰고 있었다.(“하기는 이 고장 농사란 {대범하기} 짝이 없어서 고작 물대기 전에 풀을 베여버리고 물을 댔다가 벼씨를 뿌리고 첫아지를 칠만할 때 다시 물을 대주면 되는것으로 모내기도 김매기도 없는 농사다.”) 또 ‘대상, 대상자’란 말에 ‘결혼할 사람’이라는 새로운 뜻이 생긴 것도 흥미롭다. (“저는 외국에 가 {대상을} 찾고 가정을 이루어 편히 살겠어요!”)
   평양 도착 첫날, ‘과일 단물’을 받아 마시고 순안 공항에 내려서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한 뒤 기진맥진한 기분으로 올라탄 버스.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평양 시내로 가는 30여분 동안 마주친 차는 아마 서너 대에 불과했던 것 같다. 시 외곽에 자리잡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지나 평양 시내로 접어들자 왠지 가슴이 뛰었다.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바빴고 자동차와 전차도 부지런히 그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지만 밤거리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아마도 휘황찬란한 서울의 밤거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리라. 창밖을 떨리는 눈으로 응시하다 처음으로 발견한 간판은 ‘과일남새상점’. 간판 자체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청량음료점, 군고구마상점’ 등과 같이 무엇을 판다는 것만 밝히지 다른 곳과의 차이를 드러내는 일테면 치장이나 장식이 일체 없었다. 열흘의 회의 기간 내내 받은 인상은 사람도 거리도 화장기 없이 소탈하고 담백하다는 것이었다. ‘말다듬기’도 말의 순수성을 고집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말에 끼인 불필요한 거품을 걷어내자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잠깐 경험한 북한은 이렇게 장식과 치장, 수사를 극도로 절제하는 담백한 사회였다. 그리고 그런 장식은 오로지 한 사람 ‘그이’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듯했다. ‘같은 겨레’이긴 하지만 ‘위신스키’가 폼 잡는 ‘딴 나라’에서 온 나는 이런 불균형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귀국길,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런 어쭙잖은 생각은 멀리 달아난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고급스럽고 격조 있는 수사로 치장한 ‘물신(物神)’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기고 있지 않은가.